… 나의생각 2008. 11. 17. 01:35
  





최근에 뉴라이트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이 많이 복잡해지고 내가 가진 역사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사실 직접 보지 않고 문서로 작성된 글만 읽고 공부해오고 배워왔던 짧은 지식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근대화 역사는,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조선은 35년간의 걸친 일본의 식민지배에 들어갔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에게 갖은 고초와 능멸을 당해야만 했다. 
참고) 국권박탈은 1910년이지만 나는 사실상 을사늑약 체결 이후로 식민지배에 들어갔다고 보는 편이다.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먼저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했던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탄두에 더이상 희망이 없음을 직감하고 당초 조건부 항복을 하려고 했던 것을 바꾸어서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그 때부터 우리는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이 되던 그 날, 온 민족은 광복절을 맞이하여 너도나도 뛰어나가 세상이 날아가듯이 '대한민국 독립만세' 를 외쳤고 일제에 민족을 팔았던 친일매국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가기 시작했으며,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잡힌 친일파들은 몰매를 맞아죽거나 반병신이 되거나 하는 등의 보복을 당했다.


물론 이것은 야만적인 행동일 수 있으나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같은 민족이 같은 민족의 딸을 잡아 위안부로 팔아넘기고, 아들을 잡아다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보내고 남편을 잡아다 전쟁터, 혹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팔아넘기고, 곡식이건 가축이건 죄다 잡아다가 일본놈들에게 갖다바친 인간쓰레기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법치국가인만큼 법대로 해야되는 것은 분명하나, 해방 직후 아직 제대로 된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식으로 재판을 연다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고, 당시는 무정부상태나 다름없었는데다 이미 35년간의 악랄한 통치로 인해 민심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당연히 범죄이지만 언젠가는 예고된 일이었던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가능하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임시정부가 있긴 했지만 정식정부가 아니었고, 막 해방이 된 나라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재정비할 능력이 없었다.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나라에 남한에는 미군정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북에는 소련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한에 주둔하게 된 미국은 신탁통치 기간동안 한국의 통치를 제대로 하기에는 여러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 중에서 몇가지를 꼽으라면 당시 한국에는 어느정도의 지식을 갖춘 전문인력이 굉장히 부족했고, 그 중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둘 다 할 줄 아는 인재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문인력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밑에서 일했던 하수인들에게 면죄부를 씌워주는 조건과 일제강점기 시절보다 더 높은 대우, 신변안전을 조건을 내걸어 공개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친일파들은 이렇게 다시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등에 엎고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일제강점기 시절보다 더 높은 직위에 앉아서 미국의 녹을 받아먹고 살게된 것이다.


친일파들을 완적히 척결하지 못한 채 첫 출발을 내딛은 남한은 국민들의 대다수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정책과 정부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요인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그들이 오히려 일제강점기 시절보다 더 높은 직위에 앉아 있다는 건 그 당시 국민들에겐 하늘이 원망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소련이 들어온 북한의 경우, 가장 먼저 시행했던 일이 바로 '친일파 척결' 이었고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라고 정의할 수 있는 '지주들의 재산을' 과감하게 몰수해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김일성을 앞세워 핍박을 받아왔던 국민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주들의 재산이라는 것은 그들이 비축해놓은 곡식과, 땅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이 '땅문제' 또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남한의 정세가 불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해방이 되었어도 지주라는 계급에 의해서 농민들의 착취는 계속 되었고, 일본이 물러갔어도 지주라는 계급을 가진 같은 민족에 의해 농민들은 또다시 착취를 반복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농민은 현재시대의 우리와 같은 일반 서민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자기 재산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건, 죄만 안지으면 되는거지 않느냐. 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당시 지주들의 횡포는 일본인들보다 더 한 것이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논리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다.


당시 농민들은 지주에게 소작을 받아, 쉽게 말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를 가지고 있는 지주에게 일정량의 농토를 빌려서 그 농토에 농사를 지은 다음에 그 땅에서 수확되는 곡식의 일부를 지주에게 빌린 땅값 형식으로 주는 것이었는데 물론 여기까지만 본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나, 당시 농민들이 지주에게 주는 그 곡식의 양이 얼마였느냐. 가 문제인 것이다.


농사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수확량은 현재와 비교했을 때 작은 편이었을 것이고, 그 농토에서 수확하는 곡식으로 1년을 먹고사는 농민들은 대부분의 곡식을 지주에게 바쳤으며, 명절때가 되면 손수 나서서 지주의 집의 제사상을 차리는 것을 거들었고, 대부분의 지주들은 그런 농민들을 하인 부리듯이 다루었다.


왜 농민들은 지주의 집에 제사상을 손수 차려주려 갔을까?
물론 그 지주의 덕망을 높게 평가해서 좋은 마음으로 간 농민도 있을 것이고, 혹은 제사상 차리는 일을 거들어주고 보수를 받거나, 차리고 남은 진귀한 음식이라도 얻어볼려고 갔거나 하는 등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부분은 내년에 있을 소작을 떼이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고, 나 역시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


농민이 지주에게 소작을 받지 못한다는 것, 혹은 작년에 비해 적은 양의 땅(소작)을 배정받는 다는 것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직업을 잃는 것, 혹은 월수입이 50%이상 줄어드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좌익이네, 혹은 빨갱이 사상에 물들었다고 손가락질 하는 뉴라이트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어떤 사상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괜한 오해는 하지 않길 바라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이고, 북한의 체제가 사회주의라는 것 정도만이 내가 아는 사상적 개념이다.)


당시 농민들이 배불리 먹고 살았더라면, 무엇때문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며 옛날 어른들이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데기를 먹고,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살았다고 했을까?
혹은 왜 매일 쌀밥만 먹었으면 소원이 없었다 라는 이야기를 했을지를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 이유는 수확량이 터무니 없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수확량이 많아도 그 중에서 대부분이 지주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세금형식으로 나라에 내야 하는데 보통 6~10인 1가구가 되는 농민들이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그 해에 흉년이 들어 제대로 된 수확을 하지 못했더라도 지주에게 내는 세금은 항상 같았다. 그렇다면 당장 농사를 지은 농민은 먹고 살 것이 없어도 지주에게 약속한 양의 곡식을 바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주에게 그 해 지은 농사의 대부분을 착취당한 농민들은 제 아무리 밥을 적게 먹어도 결국 봄이 오기전에 비축해놓은 곡식은 모두 떨어졌고, 곡식이 떨어지면 보리를 수확할 수 있는 5월말까지는 '밥을 굶어도 죽을 먹은 것 처럼 일해야하고, 죽을 먹으면 쌀밥을 배불리 먹은 것처럼 일해야' 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라면 여기서 끝내겠지만 지주들의 횡포는 더 남아있다.
겨울이 지나기도 전에 곡식이 떨어진 농민은 자연스럽게 곡식을 가진 사람에게 곡식을 빌릴 수 밖에 없는데 어차피 농민들이야 자기 먹을 곡식도 없어서 아껴먹는 판국이니 곡식을 빌려봤자 지주나 지주의 밑에서 하수인 노릇을하며 살아가는 '마름' 이라는 계급층이었다.


지주에게 쌀을 빌려서 내년이면 더 많은 양의 쌀로 갚아야 했는데, 이것은 현재의 사채와 마찬가지인 이론이다.
만약 농민이 지주에게서 빌린 쌀을 갚지 못한다면, 몰매를 맞아야 했거나 혹은 내년에 수확한 곡식에서 더 많은 곡식을 이자형식으로 내고 또 내야 했다.
현재시대의 제 2금융권인 사채와 같은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쯤되면 왜 농민들은 항상 가난할 수 밖에 없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될 것이다.


또 이것은 모두 지주가 그러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부 지주들은 빌려간 쌀을 갚지 않으면 농민의 마누라건, 어린 딸이건 모두 강간을 하기도 했다. 돈이 없으면 제 마누라가 다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해도 욕한번 할 수 없었고, 제 딸이 강간을 당해도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그저 가슴으로 그 한을 삼켜야했다.


곡식을 준다면 이제 갓 18살난, 혹은 14살난 자신의 딸은 오십 먹은, 혹은 나이 육십이 넘은 노인에게 첩으로 팔기도 했다. 먹고 살 것이 없어 자신의 딸을 인신매매하던 시절이었다. 그게 해방직후의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뉴라이트가 영웅으로 추대하는 이승만은 처음 공약으로 내세웠던 토지분배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그로인해 농민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지고 있던 시점에서 북에서 들려오는 공산주의에 관한 말들은 당시 농민들에게 끌리는 이야기 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운것이라고는 농사 짓는 법이 전부인 당시의 농민들에게는 사실 사상적 개념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누구나 인간이기에 똑같이 사람대접받으며 살고 싶었고, 내 땅에서 내가 지은 곡식으로 온 가족이 모두 배불리 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복을 약속한 사람은 있었지만 그 약속을 실천시켜주는 사람은 없었고, 그런 이야기는 그저 농민들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만 같은 이야기 였을 것이다. 현재 시대로 표현하자면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과 평등하게 대우받고 월세도 아니고 전세도 아니라 내 명의로 된 내 집을 하나 가지고 싶은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상황속에서 공산주의가 내세운 이념이 바로 농민들이 꿈꾸는 천국같은, 그야말로 꿈같은 세상이었는데 이미 북한에서는 그런 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주와 소작농이라는 개념도 없고,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달콤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특히 지주층에게 모된 짓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공산주의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친일파들을 모두 척결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해서 농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해서 모두가 배굶주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민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그런 상황속에서도 이승만은 공약으로 내세웠던 토지개혁을 끝까지 모른체 했다.
물론 지주층에서 반발이 너무 심했기에 시행하기가 힘든 것도 있었겠지만 이미 선거공약으로 내세울 때부터 그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인데도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농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과 다름 없지 않느냐고 나는 뉴라이트에게 묻고 싶다. 또 그런 사기행각을 벌인 '권력욕에 미친 노인네' 가 영웅인지 묻고 싶으며 그런 사기꾼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그대들의 뇌는 똥만 가득차있는지도 한번 물어보고 싶어진다.


근대사 역사를 알아가다보면 6.25가 발발하기 이전까지 국내 정세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음을 알 수 있는데 각 지방에서는 지주들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고, 몇몇 군인들은 공산주의에 빠져 군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제주 4.3 항쟁과, 여순반란사건 등)


남과 북은 이미 6.25 발발 전부터 갈라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것을 어떻게든 말려보고자 중재에 나선 것이 바로 백범 김구이다. 백범은 갈라진 민족을 어떻게든 화해시켜보기 위해 본인의 자존심까지 모두 바닥에 내팽개치고 노구를 이끌고 김일성을 만나러 직접 평양으로 가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백범은 이승만의 권력욕의 희생양이 되었고, 뉴라이트는 이런 백범을 테러리스트라 칭하고, 이승만을 영웅이라 칭한다.



과거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에 농민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지고 산으로 올라가 산나물을 캐먹고 나무뿌리를 캐먹거나 나무껍질을 먹고 살았지만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곡식을 창고 가득히 쌓아두었던 지주들은 그 곡식으로 하루 세 끼를 쌀밥으로 먹고, 그래도 쌀아 남아돌아 그 쌀로 떡을 해먹거나 유과를 해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떡을 좋아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떡을 먹을 때면 그 당시 농민들의 모습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슬퍼지곤 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아직까지도 인간의 욕심은 여전하다.
가진 자들은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쥐어 짜고, 그런 것을 최소화하고 이 사회에서 열외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또 어떻게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정치인들은 오늘도 제 딸정도 되는 여자를 옆에 끼고 값비싼 술을 홀짝이고 있거나, 골프장에서 느긋하게 골프를 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자본주의 사회고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진 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되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다만, 법치국가답게 법을 똑바로 지키자고 말하고 싶다. 불법까지 저지르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네가 가진 돈으로 네가 뭔 짓을 해도 좋지만 다만, 법은 좀 지켜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고.


정치인들에게는 제발 세상을 좀 바꾸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민족주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제 욕심만 채우고 제 배만 부르면 되는 이기주의적 사상을 가진 정치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서 제대로 된 역사를 알려줘야할 많은 학자들이 뉴라이트에 미쳐서 학자로서의 양심을 팔아넘기고 있고, 자신의 가문의 오점을 숨기기 위해 뉴라이트를 지지하는 정치인들.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활동을 해야할 종교인들이 뉴라이트에 빠져서 신의 이름을 빌려 역사를 대상으로 사기나 치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싫고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당장이라도 해외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해서 이 나라를 두번다시는 기억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어차피 이 나라에서는 옳은 소리를 하면 좌익이 되고, 바른 말을 입밖으로 꺼내면 빨갱이, 사회주의자가 되는.
일본놈들 똥꼬나 핥아주는 똥깨들이 넘쳐나는 나라이니까.


이런 나라에서 바른 소리 낼려고 하지 말고, 긍지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이 땅에서 있지도 않은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찾으려 하지말고 그냥 마음 편히 한국인이기를 포기하라고 해주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좌익성향이 강한 사람도 아니다.
현재 북한정권도 고위간부들의 지나친 욕심으로 처음의 사상은 온데간데 없고 한 독재자의 미친 권력욕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스스로가 열심히 수집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이 글을 적었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늘어놓는 뉴라이트를 비난하고자 이 글을 적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 하느님께서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대한민국의 온전한 독립이오, 둘째도 독립이오, 셋째도 독립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온전한 독립국이 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말단 문지기를 한다해도 춤을 추듯 기뻐할 것입니다. "   - 백범 김구 



그 죽음마저도 숭고하셨던 분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만행은 이제 그만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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