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생각 2008. 11. 16. 17:53
  




* 이 글은 PDF 파일로 다운로드하여 개인PC에서 PDF뷰어를 통해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상업적으로 이용하실 수 없으며 원본수정 및 재배포가 불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이별, 삼키다...]

 

 

 

 

“자기는 어떤 향기를 좋아해?”

 

문득 그녀가 물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여서 한참을 고민해야했다.

음... 짧게 신음을 흘리며 고민해보아도 내게는 딱히 좋아하는 향기라는 것이 없었다. 내게 있어 좋은 향기란 그저 맡기에 좋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문득 재치 있는 대답이 생각이 나, 그렇게 대답해버렸다.

 

“별 향기.”

 

과연 별에게 향기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저 장난삼아 해본 말장난이었지만 그런 내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버렸다.

 

 

며칠이 지나, 그녀를 만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데이트를 즐겼다.

함께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오늘 보았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다 그게 질리면 거리로 나와 쇼핑을 즐기는 단조로운 데이트였다.

헤어지기 전,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 손에 들고 다니던 작고 아담한 빨간 종이가방을 내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라고 물으며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별무늬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작고 길쭉한 상자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노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향수가 들어있었다.

 

“성인이 된 걸 축하해.”

 

그러고 보니 그 날은 5월 21일, 성년의 날이었고 나는 이제 만 20세의 성인이 되는 날이었다. 너무 무감각하게 살아온 탓에 그런 기념일은 안중에도 없었던 내가 무딘 사람처럼 느껴지고 한 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기쁨과 무안함이 공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입술에 살짝 포개어지던 그녀의 작은 입술. 그녀의 입술은 향수의 향기만큼이나 달콤했다.

그녀가 내게 선물한 향수는 딱히 무슨 향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향이었다. 너무 강하지도 않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별 향기’ 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웃음 지을 뿐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의례적으로 내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아보고 향수를 뿌리고 온 날이면 아이처럼 기뻐했고 뿌리지 않은 날이면 실망하고는 했다.

그러다보니 외출을 할 때 향수를 몸에 뿌리는 일은 내게 있어 하나의 버릇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설아.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연상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내가 찍은 사진을 마음에 들어 했고 내가 동호회에 공개한 사진들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도 되는지 내게 허락을 구하다 친해지게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밝은 분위기를 띄고 있는 사진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밝음 속에 어두운 부분, 슬픔이 묻어있는게 마음에 들었다는 그녀. 내가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하면서 의도했던 것을 그렇게 잘 이해하는 사람도 처음이었고 내 사진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그녀가 처음이었기에 사소한 질문에도 성실히 답변을 해주었고 그러다 우리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친분을 쌓게 되었다.

마침 같은 지역에 살았던 터라 웹 메신저를 통해서 지속되었던 우리의 만남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고 마음도 잘 맞아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마주앉아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혹은 커피를 마시며 오늘 보았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 혹은 장래에 대한 이야기,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어느 날, 문득. 설아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코로 가져가며 물었다.

 

“향기 좋은데? 무슨 향수야?”

 

구찌라고 적힌 것은 보았지만 그 이상의 영어는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는 해석이 불가능 했기에 내가 사용하는 향수가 어떤 종류의 향수인지 설명을 하기가 난감했다.

간단히 구찌, 라고 대답하려다 문득 그 때의 일이 생각나 싱긋 웃음지으며 대답했다.

 

“별 향기.”

 

 

사이가 좋았던 우리였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우리를 갈라놓았고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피치 못할 사정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던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고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찢어지는 가슴과 상실의 고통을 각오하고 이별을 통보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또 생각했을 지를 생각하니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나 같은 놈은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 넌 잘해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차갑게 돌아서버렸다. 먼저 헤어지기를 말하고 우는 그녀가 바보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미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끊었던 담배를 피웠다. 매운 연기에 눈이 따가워 눈물이 흘렀다.

시발, 그저 그렇게 욕 한마디 지껄이며 괜히 짜증만 낼 뿐이었다. 다음 날은 비가 내렸다. 그녀 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이제는 내 마음대로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차갑게 땅을 적시는 빗방울이 자꾸만 내게 울음을 터뜨리길, 스스로 무너지길 강요하는 것 같아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게 이별이구나, 하고 생각해보아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서로를 위해서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어렸던 그 때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꼭 남자들은 그렇더라.”

 

뭐가? 라고 내가 반문하자 설아는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여자친구 때문에 힘들게 끊어놓구 헤어지면 다시 피우더라구.”

 

그렇게 상처를 감추고 또 마음을 숨기며 살아가는 남자들의 마음을 여자가 이해할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여자들의 눈에 남자라는 존재는 그저 육체적인 사랑에만 열광하는 늑대, 혹은 짐승으로만 보일 테니까.

나는 그런 내 생각을 말로서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그런 말을 한다면 남성우월주의자, 혹은 변명으로만 여겨질 것만 같아 입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설아와 나는 연인도 친구도 아닌 어중간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다. 하루는 저녁쯤이 되어 설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촌동생과 그 동생의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사촌동생을 빼고는 다들 초면이라 혼자서는 외롭다며 시간이 된다면 함께 술을 마시자는 것이었다.

마침 할 일도 없었고 비 개인 후였기에 나 역시도 술 생각이 간절해서 흔쾌히 초대에 응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많은 이들에게 “만남의광장” 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시계탑” 이라는 명칭으로 통하는 도심에 위치한 분수대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그 속에 설아와 사촌동생이 있었다.

사촌동생의 이름은 이민주.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빠른 생년이라 학년은 한 학년 위였다. 민주는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었던지라 처음 만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어색해 하지 않았다. 다소 경직된 모습이었던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민주의 친구들이 도착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고 그동안 우리는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며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인근의 당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차피 상대는 여자들이니까... 라는 거만한 생각으로 시작한 게임이었지만 민주와 설아의 포켓볼 실력은 여자치고는 수준급이여서 두 게임 모두 완패해버렸고 설아는 남자가 왜 그리 당구를 못치냐며 나무라고 한술 더 떠서 민주가 약을 올리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민주의 친구라는 정훈과 미진이가 도착해서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가까운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소주잔이 오가고 한 잔의 술잔을 비우고 우리들은 정식으로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잔의 술로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민주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여서 조금 더 친해지자 서슴없이 장난을 걸어왔고 그런 사소한 장난들을 받아주다 짧은 시간 만에 우리는 꽤 친해졌다.

최신가요가 흘러나오는 호프집에서 단 시간에 여러 잔의 술잔을 주고받으며 우리들은 20대 초반이 나눌만한 흔한 대화를 나누었다. 마침 학기 초였기에 주된 대화내용은 신입생 OT라던지 학기 초답게 잦아진 술자리로 인해서 생기는 웃지 못한 에피소드 같은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우리 집에는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녁 6시부터 애들이 뻗어가지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고 바닥에 자기가 토해낸 토사물을 베게삼아 누워 자고 있다니까.”

 

내 말에 민주와 정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들도 그와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 설아는 금세 취한 것인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잠시 쉬고 싶다며 불편한 자세로 벽에 머리를 기대어 잠을 청했다.

 

“그 자세로 자다가는 목 근육이 뭉쳐서 며칠은 고생할 걸.”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설아가 내 다리를 베고 편히 누워서 잘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민주와 정훈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제스처를 보이며 최고라고 나를 치켜세웠고 나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들은 몇 잔의 술잔을 더 주고받으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설아를 챙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 다리를 베고 곤히 잠들어버린 설아의 모습이 마치 새끼 고양이 같아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일교차가 심한 편인데다 잠이 들면 몸의 체온이 낮아져 추위를 느끼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내가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서 설아의 몸에 덮어주자 민주는 묘한 눈빛을 던지며 말했다.

 

“두 사람, 하는 행동들을 가만히 보면 꼭 연인사이 같은데?”

 

나는 미소로 지으며 아니라고 손사래쳤다.

 

“하지만 설아언니에겐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구. 벌써 1년이나 사귄 남자친구가.”

 

처듬 듣는 이야기에 당혹스러웠지만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설아 정도의 여자라면 남자친구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제야 내가 깨달은 것은 여태껏 어중간한 사이를 유지해오는 동안에 나는 단 한 번도 설아에게 교제중인 사람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것은 설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교제중인 사람이 있고 없고 하는 그런 문제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어중간한 사이를 유지해 온 것이었다. 민주는 술잔을 비우며 말을 이었다.

 

“물론, 설아언니는 그를 남자친구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무슨 말이야?”

 

라고 내가 묻자,

 

“헤어졌거든. 하지만 아직 남자쪽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바보 같군.”

 

이라고 말해도 내가 그런 말을 내뱉을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두 사람, 굉장히 잘 어울리는 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진이가 끼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정훈도 ‘동감이야’ 라며 거들었다.

 

“한잔 받아.”

 

나는 그런 말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정훈의 빈 술잔을 채워주었다. 모두의 빈 술잔을 채워주고는 쨍-소리 나게 건배를 하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어때? 넌 설아언니한테 관심 있어?”

 

다소 공격적인 질문이라 느껴졌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설아를 만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설아를 만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설아를 만나오면서 단 한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끌어들인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랑이라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잘 맞는 친구처럼 느끼고 친구처럼 교제해왔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다행히 설아가 깨어나서 그 질문은 쉽게 무마할 수 있었다. 어느정도 컨디션을 회복한 설아가 다시 합세하자 우리는 젊음을 마음껏 즐기자며 다시 술을 마셨다.

우리보다 두 살이 많은 설아는 늙은이는 좀 봐달라고 했지만 민주는 시끄럽다며 더 많은 술을 먹일려고 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새벽 한 시가 되자, 어느정도 취한 우리는 자리를 옮기자며 밖으로 나와 노래방으로 가는 길목 인근에 있는 게임센터에 들려 게임을 즐겼다.

민주와 미진은 술에 취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사람처럼 PUMP 발판위에서 날아다녔고, 정훈은 능숙한 솜씨로 EZ2DJ를 즐겼다.

나는 설아와 레이싱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었고, 미진은 음주운전이라며 우리를 놀렸다.

한껏 흥이 오른 우리는 본래의 목적지였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노래를 불렀다. 평소 뉴에이지 음악이나 거친 록음악을 주로 즐겨듣던 나로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분위기를 주도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분위기 어울릴만한 노래를 아는 것이 없었다. 요즘에 유행하는 최신곡을 알기는 하지만 부를 줄은 몰랐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이런 나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와 정훈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신나는 리듬의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자리에 앉아 박수만 치던 나는 민주의 손에 끌려나와 강제적으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한참을 망설이다 힘겹게 선곡한 노래는 이승환의 ‘꽃’이었다.

 

“나 이승환 좋아하는데.”

 

한껏 들뜬 설아의 목소리.

나는 이승환을 좋아한다기는 보다는 꽃이라는 노래의 서정적인 한편의 시같은 가사가 마음에 들어해서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

내가 노래를 마치자 설아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그에비해 다른 이들의 눈빛은 한껏 분위기를 띄워놨는데 내가 발라드를 불러 흥이 깨졌다는 원망스러움으로 차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자리에 앉자 이승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승환 앨범은 3집이 굉장히 좋아. 어머니가 작고하시고 만든 앨범이라서 노래 하나하나 가사가 다 슬퍼.”

“슬픈 노래를 좋아하나보네.”

“조금. 그런 면은 있어.”

 

생긋 웃는 설아. 해맑은 그녀의 표정에서는 슬픔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그녀는 ‘슬픔’ 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 덧 새벽 네 시가 되었고 두 시간동안 뛰어논 민주와 정훈은 완전히 지쳐버린 모습으로 벌써부터 늙었다고 불평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미진은 피곤하다며 먼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민주는 언니를 부탁한다고 말하며 정훈과 가버렸다. 민주는 잘해보라는 듯 윙크를 해보였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시내중심가의 텅 빈 거리에 있는 사람은 설아와 나 뿐이었다.

 

“집으로 가야지?”

 

라고 내가 묻자

 

“너무 어중간한 시간인데.”

 

라고 설아는 대답했다.

설아는 조금 술이 깨고 첫차를 타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피곤했던터라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설아를 혼자 두고 집에 갈수는 없었던지라 할 수 없이 인근의 DVD방으로 들어가 첫차가 다닐 시간까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주온이었다. 이미 극장에서 한번 봤던 영화였지만 설아가 보고싶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그걸로 선택하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설아는 내게 물었다.

 

“나 궁금 한거 있는데.”

“뭔데?”

 

쇼파가 아닌 침대에 가까운 자리에 나란히 누워서 몸을 옆으로 돌려 나를 바라보는 설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혹시 모든 여자들에게 그런 친절을 베푸는거야?”

“어떤 친절?”

 

이라고 반문하자 설아는 다리베개를 해준 일과 자는 동안 카디건을 덮어준 일을 말했다.

 

“딱히 그렇진 않아. 베푸는 친절이야 그때그때 다르지.”

“그러니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르다는거지?”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뭐 까놓고 말해서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상대할 때랑은 틀리다는 거지.”

 

솔직한 대답에 설아는 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예쁜 여자에 속하는거네?”

“글세. 그걸 또 그렇게 연관시키면 곤란하지 않아”

“치사해.”

 

입이 삐죽튀어나온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 곧바로 내 가슴을 팔꿈치로 내리찍는 설아의 공격에 나는 욱! 하고 소리를 내며 장난스럽게 괴로운 시늉을 했지만 겉으로만 그랬지 솔직히 아팠다.

설아는 어린아이처럼 헤헤거리며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덕분에 굉장히 편하게 잘 수 있었어.”

“왜?”

“사실 잠잘 때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강아지냐?”

 

라고 물었고, 설아는 우씨거리며 내 얼굴에 쿠션을 집어던졌다.

나는 쿡하고 웃었다. 이미 우리는 영화에는 안중도 없이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설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남자친구랑은 왜 헤어진거야?”

 

민감한 질문이었지만 설아는 ‘민주 고 년’ 이 애기했나보네. 라고 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필요할 때, 그는 항상 내 곁에 없었으니까.”

“바쁜 사람인가보네.”

“그런 것도 있지. 그 얘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장거리 연애다보니 서로 만나기도 힘들고. 그런 것도 있지.”

 

장거리 연애라. 문득 지난 날의 추억이 머리를 스치고 필름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나와 함께 있을 때도 나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어.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사정이 있었겠지.”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참았지만, 매번마다 사정이 있을 수는 없는거라고 생각해.”

 

꽤나 복잡한 이야기와 응어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설아는 곧은 자세로 누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에게 너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나에 대해?”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자주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어.”

 

문득 설아에게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앞서 나에게 설아는 어떤 존재인지부터 확실히 알아야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었기에 그 말은 입가에서만 맴돌았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혹은 밀폐된 공간이여서 그랬던 것일까. 갑자기 생겨나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나는 곁에 있는 설아의 목에 팔을 감싸고 조심스럽게 설아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설아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나의 수줍은 키스를 받아주었다. 설아는 내 목주위를 훝으며 말했다.

 

“오늘도 별 향기네.”

 

별 향기. 갑자기 머리가 아파진다.

나는 그 이상의 스킨쉽은 스스로 포기한다. 설아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침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의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나는 버스를 타는 곳까지 설아를 바래다주고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설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들어갔어?”

 

응, 이라고 대답하자 설아는 이제 샤워를 마치고 막 잠들기 전에 생각나서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도 이제 씻고 잘 것이라고 대답했고 설아는 ‘잘 자’ 라고 인사했다.

내가 ‘그래, 너도 잘자구 좋은 꿈 꿔.’ 라고 대답하자 설아는 우리 마치 연인사이 같아. 라며 웃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설아의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설아가 정말 나의 연인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연인사이라... 나쁘지 않지.”

“응, 나쁘지 않아.”

 

설아도 동의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가 너무도 귀엽게 느껴졌다. 설아는 나보다 두 살 연상의 여인이었지만 가끔은 나보다 연하같은 그런 귀여움이 있는 여자였다.

 

“잘 자.”

“너도 잘자구 또 연락할께.”

 

그렇게 연인처럼 대화를 주고받고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다시 사랑이 찾아온 것일까? 절로 휘파람이 나오는 것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몸으로 밖으로 나온 나는 담배 한 개피를 피웠다.

몸에는 바디로션의 레몬향이 묻어나고 있었다. 레몬향과 함께 미세하게 코 끝을 스치는 별 향기. 어느 새 별 향기는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이 담배를 마지막으로 끊어야지, 이 담배를 마지막으로 잊어야지. 그런 생각으로 살아온 게 벌써 일 년이었다. 새삼 시간의 흐름이 굉장히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아는 내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나는 설아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 그런 생각으로 방으로 돌아온 나는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내게 묻는다.

 

“자기는 어떤 향기를 좋아해?”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은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그 때와 변함없이 ‘별 향기’ 라고 짓궂게 대답한다. 그녀는 그런 향기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라는 의문에 가득찬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그녀를 깨물어 주고싶다고 생각한다.

공간이 바뀌어 한적한 공원에서 한가로운 주말의 오후를 보내고 있다. 내 옷에 얼굴을 파묻고 그녀는 말한다.

 

“오늘도 뿌리고 왔네.”

 

아이처럼 기뻐하며 뿌듯해하는 그녀.

눈을 뜬다. 휴대폰 벨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가라앉은 낮은 톤의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에서 활기찬 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아직도 꿈나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거야?”

“이제 막 깨어났어.”

 

시계를 보니 밤 10시였다. 잠이 든 것이 오전 9시쯤이었나... 굉장히 피곤했나보다. 이 때까지 자버리다니.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몇시에 일어났어?”

 

라고 묻자 설아는 다섯 시! 라고 활기차게 대답한다.

그 목소리의 상쾌함에 나 마저도 상쾌한 기분이 든다. 귓가에는 사소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설아의 목소리와 ‘두 사람, 잘 어울려’ 라고 말하던 미진의 말이 겹쳐진다.

나는 다소 심각한 어투로 설아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잠시동안의 정적.

 

“글세, 친구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사이?”

 

그리고 이어지는 설아의 목소리.

 

“하지만 정식으로 교제하는 것은 아닌 사이.”

“언제까지 이런 어중간한 사이로 지내야 하는 걸까?”

“글쎄, 나는 딱히 생각 해본적 없는걸. 이런 사이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말야.”

 

진지함이 결여된 단순한 사랑.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 편이 부담감이 더 적어서 마음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5월 14일, 로즈데이.

그녀는 한 송이의 장미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 좋은 오늘, 그녀는 누구와 함께 해피버스데이 송을 부르고 있을까?

며칠 전부터 그녀의 미니홈피를 남몰래 드나들다 김성현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부터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지, 간단히 주고받은 몇 마디의 방명록을 통해서 그가 그녀에게 어떤 남자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어떻게 여기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그녀도 그를 마음에 두고 있고, 그는 그녀와 아주 잘 어울리는 멋진. 퍼펙트 가이다.

가슴이 답답해져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근처의 공원을 산책했다. 귀에 꽂은 MP3 Player 에서는 스티브 윈더 원곡의 ‘Lately' 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러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가 되었지만 특히 나는 성시경이 리메이크한 Lately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성시경의 부드러운 음색과 잘 어울린다고 해야할까?

오늘따라 그 노래의 음색이 너무도 애절해서 반복적으로 들으며 공원을 유유히 산책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 곳곳에는 로즈데이를 기념하는 선물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 길을 지나다 우뚝 멈춰서, 종이접기로 만든 장미 꽃다발을 덜컥 사버리고 말았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음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버린 것이었다.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후회가 막심했다. 전해주지도 못할 선물을 왜 사버리고 만 것인지 나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었다.

설아에게라도 줄까... 생각하지만 굳이 내가 아니라도 설아에게 이런 장미를 줄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냥 잠이나 자야지. 라며 침대에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결국 밤 11시가 되어 택시를 타고 설아의 집으로 향했다. 집 밖에서 설아를 불러내 준비한 장미 꽃다발을 설아의 품에 안겨주었다.

설아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아이처럼 기뻐했다.

늦은 밤, 설아의 집 주변 놀이터 그네에 앉아 우리는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설아였다.

 

“뜻밖이야.”

“뭐가?”

“네가 이런 선물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거든.”

“그냥 지나가다가. 이쁘길래. 그래서 그냥 샀어.”

 

나도 모르게 해버린 거짓말. 잠시동안 흐르는 고요한 침묵. 수은등의 불빛 아래서 설아는 말한다.

 

“기뻐, 굉장히.”

 

수은등에 반사되어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님처럼 초롱하게 빛나는 그녀 고운 눈망울.

나 있잖아. 사실은,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어. 진심으로 사랑했어.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했어.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아픔도 견뎌낼 각오가 되어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사랑한다는 핑계로 날 떠났어.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해야 했어. 내가 그러길 그녀가 바랬으니까. 또 그 마저도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내 사랑의 일부라고 믿었으니까. 헤어짐도, 사랑의 일부라 여겼어. 슬픈 일이 아닌, 더 나은 행복을 위한, 사랑의 일부라고.

사랑을 지킬 수 있을 때가되면 다시 내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그 때가 되어도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결국 난 스스로 감당해낼 수 없는 커다란 아픔만을 가득 안은 채 홀로 남아버린거야.

사실은 말야. 오늘이... 바로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야.

...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솔직하게 설아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었는데. 진실은 그저 입가에만 맴돌다 결국 설아를 속이는 거짓말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사슴같이 고운, 그 순진한 눈망울을 마주볼 수 없었다. 나는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시선을 돌려 까만 하늘 아래에 화사롭게 빛나는 수은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며칠 뒤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각자의 파트너를 데리고 오는건데, 뭐 그러니까,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는건데. 난 여자친구가 없거든. 그래서 말인데.”

“오호라~ 그런 부탁을 하기위해서 꽃을 사오셨다?”

“뭐...”

 

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오케이, 알았어. 내가 너 어깨 당당히 펼 수 있도록 해주지.”

 

 

며칠 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설아는 눈부신 모습으로 나타나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단단하게 세워주었다. 평소보다 더 예쁘게 꾸민 설아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도대체 어디서 꼬셨대?”

“능력 좋다~ 야.”

 

라는 친구들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모임에서 설아와 나는 다른 연인과 별 다를바 없는 다정한 연인이었다. 함께 손을 마주잡고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챙겨주며 우리는 모임을 즐겼다.

그녀는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어때?”

 

라고 물었고 나는 전혀 딴 사람 같다고 말하며 도대체 설아는 어디가고 누가 대신온거야? 라고 장난을 쳤지만 그 말에는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허락도 없이 어느샌가 서로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교제를 하고 있었다. 설아의 집에서 함께 비디오를 보거나 식사도 하고 때로는 가까운 산책로를 걸으며 데이트를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키스를 하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아침이면 의무적으로 모닝콜을 하고 밤이면 굿나잇 콜을 한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내 마음은 상실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설아와 함께 한다는 것은 내게 행복을 안겨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슬픔과 죄책감이 공존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설아와 나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 채 고백의 말이 없었던 것처럼 이별의 인사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별을 맞이했다.

마치 처음부터 사랑한 적 없었다는듯이.

우리의 사랑은 한낱 백일몽에 불과한 사랑이었던 셈이다. 서로의 자리를 잠시 벗어나 하루 동안의 일탈을 꿈꾸는 불륜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설아와의 짧은 연애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녀와의 연애도. 모두가 결국엔 한낱 백일몽에 불과한, 불장난에 불과한 시시한 연애일 뿐이었다.

마음이 괴로워, 혼자 술에 취하고 싶어 혼자서 술을 마셨다. 소주의 쓴맛도 느끼지 못하고 물처럼 술잔을 비워내다 평소 주량을 넘어 지나치게 과음을 하고야 말았다.

비틀거리며 잔뜩 풀어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괜히 날아오를 듯, 기분이 좋아졌다. 당장이라도 디스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눈물이 흘렀다.

웃음과 눈물의 경계선 사이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녀에게서 선물받은 별 향기를 꺼내 베란다로 향했다.

코끝을 스치는 별 향기에 술에 취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향기속에 그녀와 나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향수의 뚜껑을 열어 미련 없이 별 향기를 하늘에 뿌렸다.

이제는 그만, 이 좁은 유리병에서 벗어나 향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추억이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향기는 잠시동안 코끝을 찌르다 이내 모두 저 하늘로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이제와 후회한다해도 하늘에 뿌려진 향수를 되담을 수 없음을 나는,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되담을 수 없는 저 향수처럼, 우리도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한다.

이제야 나는 연인과 헤어짐에 아파하며 눈물을 떨군다.

되담을 수 없는 저 향수처럼. 되돌릴 수 없는 그녀와 나의 지난 사랑을 가슴에 묻기로 한다.

되담을 수 없는 저 향기처럼...

 

  

  

http://byeoln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