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의 잃어버린 處女性
By Hanbyeol.L
[001]
내가 처음 그 사건을 접하게 된것은 내 직업에 따른 업무였을 뿐이었다.
처음 그 사건을 처리할 때만해도 이 사건이 훗날 내 삶에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지난 날의 나의 이야기다.
내 직업은 검사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접하게 된것은 1년전, 이 맘때 였을 것이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경찰서에서 넘어온 조서를 훑어보고 있었다.
사건은 유흥업소 종업원이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자살 자체가 익숙해져버린 현대사회에서 유흥업소 종사자가 자살을 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자살한 종업원이 이제 갓 만 17세가 된 미성년자라는 사실이었다. 경찰의 수사결과에 의하면 자살한 소녀가 감금생활을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었다.
사건내용만 읽어보아도 어렴풋이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짐작이 가능했다. 검사란 직업의 특성상 가질 수 밖에 없는 일종의 육감이 작용한 것이다.
내 심증이 맞다면 업주는 자살한 종업원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금을 했을 것이고, 온갖 협박과 폭행을 일삼으며 윤락행위를 강요했음이 분명했다.
심증대로라면 업주는 유죄이지만 가장 중요한 물증이 없으므로, 업주를 처벌하는 것이 당장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우선 업주를 검찰로 불려들여 조사를 하고 필요하다면 물증을 확보를 하는 것이다.
업주는 물장사를 한다고 하기엔 여려보이는 40대 후반의 평범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보통 물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얼굴만 보아도 왕년에 힘꽤나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데 그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다정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물장사를 한다면 좋든싫든 경찰이나 검찰에 한두번쯤은 와봤을텐데 그는 생전 처음 온 사람 마냥 주위를 둘러보며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건지 업주는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나와 책상 앞에 마주앉기가 무섭게 담배부터 피우고 싶다고 했다. 요즘엔 금연운동 때문에 경찰서든, 검찰 내부든 대부분의 구역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어딜가나 예외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기꺼이 담배 피우는 것을 허락했다.
물론, 이번만 예외라는 것을 인식 시켜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조사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업주의 신상명세를 파악하고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마친 뒤,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했다.
“어쩌다 17살 미성년자를 고용하게 된겁니까?”
“정말이지 저는 그 얘가 미성년자 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종업원을 고용하면서 등본이라던지 신분증 확인도 안한다구요?”
“...그게.”
업주는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놓치지않고 강하게 밀어부쳤다.
“사실대로 말해요!”
업주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너무했나, 라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감정을 조절하며 다시 물었다.
“미성년자인걸 알면서도 고용하셨죠?”
업주는 묵비권이라도 행사하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경찰에서 작성한 조서를 훑으며 말을 이었다.
“경찰조사에서는 끝까지 몰랐다고 주장하셨는데 경찰에서의 진술은 번복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중처벌이 되는것도 아니고 충분히 사정을 봐주니까 이제 그만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그게...”
나는 그를 회유했다.
“숨기면 숨길수록 죄가 더 가중이 되는겁니다. 솔직하게만 말씀하시면 최대한 사정 봐드릴 수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 합시다.”
한참을 망설여서야 업주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사실... 그 얘가 미성년자라는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운터에서 접대만 시켰을 뿐이지 2차를 강요하거나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접대만... 나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분노가 솟구쳤으나 다시한번 더 감정을 추스렸다.
“왜 미성년자를 고용하신 겁니까?”
“조사해보시면 알겠지만 그 얘는 부모도 없는 고아입니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자기가 제 발로 찾아와서 통사정을 하길래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차갑게 쏘았다.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정을 조절하려고 최대한 애를 쓰고 있었지만 화가 치미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업주는 말을 이었다.
“제가 안받아주었더라면 다른 곳으로 갔을 겁니다. 다른 업소에 가서 험한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보살펴 주자고 생각한겁니다.”
“쉼터라던지 보호단체도 많은데 그런 곳으로 연결을 시켜주셨어야죠.”
“그건...”
업주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지만 곧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 얘는 이미 쉼터생활을 한적이 있었고 그 곳 생활을 견디지 못해 도망쳤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얘를 또 보내봤자 또 도망치고 그러다 나쁜 애들이라도 만나면...”
“그렇다면 가혹행위라던지, 임금갈취, 폭행이나 폭언 또 성매매 강요같은건 절대 없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도 딸을 키우는 부모입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어떻게 딸같은 얘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처음에 걔를 보니까 저도 고아로 자라서 어릴 적 생각도 나고 내 딸같이 생각되어서 제가 데리고 있자고 생각을 한겁니다.”
정말 딸처럼 생각했다면 접대를 시켰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말했다.
“저도 남자이고, 솔직히 말해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한 두번쯤은 룸살롱 같은 곳도 가게 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거기가 남자들이 옆에 여자 하나씩 데리고 술 마시고 노래만 부르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성매매를 강요하진 않았어도 룸 안에서 유사성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그 얘가 접대에 나간 건 네다섯번 정도 뿐입니다.”
“그럼 평소에는 무슨 일을 했다는 겁니까?”
업주는 목이 메어오는 듯 힘겹게 대답했다.
“대부분 시간을 카운터를 보거나 허드렛일을 했지요. 그 얘가 룸 안에 들어간건 업소 아가씨가 갑자기 결근해서 사람이 부족할 때 어쩔 수 없이 업소에서 부장하는 친구가 몇 번 들여보냈나 봅니다.”
“그게 딸을 키운다는 부모가 할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저도 그 때는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래서 부장하는 동생한테 화도 내고 그랬습니다.”
업주의 눈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자신의 죄를 참회라도 하는 듯, 한동안 구슬프게 울었다. 나는 더 이상의 심문은 그만두고 그런 업주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감정이 복받치는 듯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고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신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나는 그가 신과의 대화를 끝낼 때까지 기다려 줄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 사건외에도 처리해야 할 사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경찰서에서 보내온 조서를 토대로 다시 심문을 진행했다.
“사건현장의 사진과 경찰에서 조사한 것을 보니, 감금한 흔적이 보이는군요. 보시다시피...”
나는 경찰이 찍은 문의 구조 사진을 업주에게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문의 구조는 밖에서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구조입니다. 밖에서 문을 잠글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도 말이죠.”
“문을 잠근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건 제가 설치한게 아니라 제가 처음 그 건물을 구입할 때부터 있었던 겁니다. 또 우리가게엔 자물쇠라곤 가게문을 잠글 때 쓰는 것 하나 뿐이구요.”
“물론 당시 사건현장에서는 문을 잠글 수 있을만한 자물쇠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문의 구조를 본다면 숟가락으로도 쉽게 걸어 잠글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업주의 눈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얘는 왜 자살한거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묻고 싶어요. 도대체 왜 자살을 한건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살할리는 없지 않습니까? 평소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던가, 하는 그런 사소한 이유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게다가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유서를 빼돌렸다던지”
“아닙니다! 저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저는 결백합니다, 검사님...”
업주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그 이상의 진술은 거부했고 나는 순순히 그를 집으로 돌려 보내주었다. 그냥 이대로만 본다면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였지만 따지고 본다면 많은 의문점이 남았다.
정말 업주는 자신의 진술처럼 단 한번도 문을 잠근 적이 없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에 의지한다면 유흥업소들은 5:5, 혹은 7:3 이라고 생각하면 편한 곳이었다.
열 곳중의 다섯곳은 업주와 종업원간에 돈관계가 제법 잘 이루어진 구조이다. 100만원을 번다면 업주가 몇 %를 가지고 나머지 수익과 보너스는 종업원이 챙기거나 또 업주에게 몇 %를 떼주는 구조이지만 나머지 다섯 곳은 그러질 못했다.
강제적으로 감금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결근비, 화장비, 지각비 등. 말도 안되는 벌금으로 빚을 만들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늪에 빠져버린 몇몇 종업원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90% 이상이 다시 잡혀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잡혀온 종업원들은 죽지않을만큼 구타를 당하고, 구타를 당한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몸을 팔아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불합리적인 조항이 가득찬 각서를 작성해야했고 결국 그 각서가 또 다른 족쇄가 되어 영원히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손님들이 찾지 않는 퇴물이 되면 섬이나, 시골의 다방 레지로 팔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악마와의 계약, 노예계약과 같은 구조이다.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업소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업소도 있는게 현실이었고 대개 자살사건이 일어났다면 후자인 경우가 대다수 이므로 나로선 이번 사건의 방향을 후자쪽에 비중을 두고 있는게 당연했다.
어쩌면 소녀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업주를 심문해보아도 더 이상 건질만한 수확이 없음은 분명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예외적으로 이번 사건만큼은 직접 발로 뛰어서 해결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002]
업소는 현재 영업정지 상태였다. 업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업주의 집이 있었는데 낡은 다세대주택 건물이었다. 사진으로 봤던 것처럼 방문을 밖에서 잠글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구조였다.
그 주택에서 업주와 종업원들은 같이 지내고 있었다. 나는 이번 사건을 맡았던 형사와 함께 종업원들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다.
영업정지중이라 그런지 낮 시간대 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종업원들은 깨어나 있었다. 건물 내부를 살펴보니, 문은 밖에서 자물쇠를 걸어 잠글 수 있는 구조였다. 굳이 자물쇠가 아니더라도 숟가락만으로도 쉽게 잠글 수 있는 구조.
나는 자꾸만 그 문의 구조가 신경 쓰였다.
집을 둘러보는 우리를 쳐다보는 종업원들은 수군거리며, 경계하는 듯한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붙임성 좋은 몇몇 종업원들은 우리에게 ‘오빠’ 라거나 ‘나중에 놀러오세요’ 라고 눈웃음을 흘리기도 했지만 거북해하며 인상을 쓰는 형사와 달리 나는 별 신경쓰지 않았다. 대충 사건현장을 쭉 둘러보다 종업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시작했다.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종업원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따로 빈 방에 들어가 한명씩 돌아가며 조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모든 종업원들의 말은 일치하고 있었다.
업주는 친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고 감금이라던지 폭행, 임금갈취와 같은 불이익은 일절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숙소비 명목으로 매달 얼마의 금액을 월급에서 차감하긴 하지만 그 금액도 그리 큰 편은 아니었던지라 문제가 되진 않았다. 종업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내가 생각했던 그런 문제는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특이한것이 있다면 소녀에 대한 것을 물으면 한결같이 대답을 기피하는 것이었다. 몇몇은 얼굴이 하애지기도 했다. 말하고 싶지 않다며 당당히 묵비권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고, 특별히 친하게 지내질 않아서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직접 현장까지 와서 조사를 해보았지만 건진 수확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대로는 그 이상 수사를 진행해도 아무런 수확이 없어보였고 나와 동행한 형사 역시 난감을 표했다.
“이미 저희 경찰에서 조사 할때도 종업원들은 지금처럼 말했습니다.”
“마치 누가 시킨 것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한결같이 증언이 일치합니다. 그리고 저 문의 구조. 저게 마음에 걸려요.”
형사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구역은 누가 관리하는 곳입니까?”
“흑룡파 애들이 관리하는 지역입니다.”
“깡패새끼들이라도 잡아다가 쥐어흔들면 뭐가 좀 나올까요?”
“흑룡파 애들이 이 구역에서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다 무슨 상인회라며 사무소를 차려놓고 하고 있는거고 업주들로부터 아무런 항의도 없다보니 괜히 건드리기도 그렇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괜히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대한민국 검사가 고작 깡패새끼들을 함부로 못건드려서 이러고 있으니.”
내 불평에 형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확대 시켜봤자 검사님만 피곤해지십니다.”
형사의 말이 조금 신경에 거슬렀지만 그게 대한민국 검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것은 확실했다.
보호비, 라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지만 주변 상인들로부터 아무런 항의도 없는데다, 누가보아도 괜히 돈만 갈취하는 그 보호비라는 것이 ‘시설보수비’ 혹은 ‘유지비’ 라는 명칭으로 합법적인 틀 안에서 거두어지는 돈인지라 건드려보았자 형사의 말처럼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더 넓은 시점으로 바라보자면 흑룡파는 몇 개월전 있었던 대대적인 조폭 검거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그 명맥을 유지시킨 조직이다. 그들의 뒤에는 나같은 일개 검사가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그 날의 조사는 그 것으로 끝이었다.
며칠 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녀의 부검결과가 검찰로 도착했다. 결정적인 사망원인은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였다. 자살이란 말이었다. 목에는 밧줄 자국외에는 어떠한 외상도 없었다. 그리고 몸 이곳저곳에 타박상의 흔적이 있긴 했지만 너무 오래된 상처라 구타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힘이 들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소녀의 자궁에서 7개월 가량 된 태아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성관계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부검결과를 들고 곧장 업주를 검찰로 소환했다.
지난번과는 틀리게 업주는 한결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번과는 확연하게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업주의 앞에 부검결과를 내밀며 말문을 열었다.
“죽은 소녀의 부검결과입니다. 읽어보시죠.”
업주는 시큰둥하게 서류를 들고 읽어 내려갔다. 나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차츰 그의 표정이 굳어지며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나는 죽은 태아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이며 추궁했다.
“보셨다시피 놀랍게도 죽은 소녀의 자궁에는 7개월된 태아가 있었습니다. 성관계가 없었다는게 분명합니까?”
“말도 안되는...”
업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업주의 표정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며 그의 속마음을 읽어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지금의 경악은 연기가 아닌, 진짜가 분명했다. 업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럴리가요? 저는 성매매를 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태아는 뭡니까? 인공수정이라도 되었다는 겁니까? 아니면 처녀잉태라고 말하고 싶으신겁니까?”
그는 과거를 떠올리듯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남자친구?”
업주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한 9개월전 쯤이었나? 왠 남자얘랑 같이 있는걸 몇 번 봤습니다.”
“그럼 둘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지요. 막말로 요즘 애들이 뭐 애들입니까? 그 나이되면 벌써 섹스정도는 하고도 남을 나이죠.”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었다. 한 편으로는 그렇다며 당신의 딸도 남자친구가 있다면 이미 섹스경험이 있겠군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업주는 말을 이었다.
“설사 제가 성매매를 강요 했다고해도 이 바닥에서는 에이즈 문제도 있고해서 성관계시에는 반드시 콘돔을 착용합니다.”
업주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해보았지만 도무지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럼 남자친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지막으로 본게... 그러니까 한 6개월쯤 된 거 같습니다. 그 때 이후로는 본적이 없어요.”
업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녀는 남자친구와 관계를 가졌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생겼으며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안 남자친구가 소녀를 매몰차게 버렸다. 라는 가설이 생길 수 있었다.
이 가설은 소녀의 자살에 동기를 부여하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남자친구와의 문제로 자살을 했다고 단정을 짓는 것도 섣부른 판단이었다.
나는 다시한번 더 부검결과를 꼼꼼히 살폈다. 소녀의 몸에 약물이라던지, 음주의 가능성은 없었다. 만약 술이라도 마신 상태였더라면 술을 마시고 홧김에 자살을 했을 수도 있을테지만 맨 정신으로 유서도 없이 자살을 할 확률은 희박했다.
나는 곧바로 소녀와 교제했다는 남자친구를 수배하고 업주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 가지 수확이 있긴 했지만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쉽게 단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며칠 뒤, 경찰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아무도 그 남자친구란 인물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질 않아 그의 거처라던지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찾는게 힘들다는 통보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상의 수사진행이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업주는 미성년자 고용과 관련된 청소년 보호법 위반에 관한 처벌만 받게 되었다. 바쁜 업무에 시달리며 그 사건도 그렇게 잊혀져 갔다.
[003]
희미하게 떠오른다.
어두운 밤거리, 나는 밤거리를 홀로 걷고 있다.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거리다. 처음에는 생각이 나질 않아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어야했다. 그러다 이곳이 어디인지 불현듯 떠올랐다.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뒤뜰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제법 규모가 큰 편인데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동의 뒤에는 아이들이 뛰어놀만한 풀밭이 있었다.
나는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풀 밭에는 울퉁불퉁 한것이 나란히 줄을 지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것은 바로 무덤이었다.
평온하게만 보였던 뒤뜰은 시체가 묻혀있는 공동묘지로 변해있었다. 소름 끼쳤지만 아파트 입구까지의 거리는 이제 5m 가량 남았을 뿐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입구에 도착할 것이고 그 곳에는 경비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난 대한민국 검사다. 수없이도 많은 살인사건을 조사했고 시체도 지겹도록 보아온 놈이다. 혼자서 공포영화도 볼 수 있는 담력을 가진 사나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지만 이상하게도 좀처럼 아파트로 들어가는 정문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지질 않았다. 그러나 딱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느 무덤에서 혼령같은 물체가 쏙 뻗어나와 하늘로 사라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신비한 체험이었다. 마치 어린시절 할머니께 들었던 도깨비불을 실제로 본 것만 같았다. 마치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다는 말을 떠올리게만드는 광경이었다.
또다른 무덤에서도 혼령같은 물체가 빠져나와 하늘로 향했다.
‘우와!’
공포심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그 놀라운 광경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는것도 잠시, 내 감탄은 곧장 비명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혼령은 하늘로 사라지지 않고, 바로 내 앞에 착지를 한 것이었다. 길쭉한 물체가 점점 사람의 형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물체는 하얀소복을 입은 귀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아파트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경비실에만 도착하면 이 공포도 끝날거라 믿었다. 하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질 않는다. 다급해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귀신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선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뒤따라오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었다. 마치 굳어버린 동상처럼...
귀신은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을 뻥긋거렸다. 하지만 공포에 질려버린 나는 그게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수가 없었고 알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공포의 절정에 치달은 나는 비명을 질렀고 그와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몸에는 땀 한방울 맺혀 있질 않았다. 마치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와 같은 음산한 차가움만이 몸 속에 가득했다.
그것은 꿈이었다. 하지만 너무 생생해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그런 악몽이었다. 가위에 눌린 것일수도 있었다. 침대 옆에 놓아둔 시계를 보니 시계바늘은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5시, 아직 출근준비를 하기까지 한 두시간의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나는 아직도 꿈에서 헤어나오질 못한건지 두려움에 떨며 어서 빨리 해가 뜨기를 기도했다.
[004]
그 후, 나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꿈의 내용은 항상 동일한 것이었다. 처녀귀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항상 두려움에 질려 도망가기를 반복할 뿐. 귀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고 싶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꿈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냉정은 찾아볼 수 없고 공포에 질려 도망가기 바쁠 뿐이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어이, 윤 검사.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어때서?”
딴 생각에 잠기어 있을 때 동기인 추 검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요즘 안색이 안좋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대충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악몽을 꾼 이후로 일도 좀처럼 손에 잡히질 않고 매일 딴 생각에 빠져 허무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항상 일은 꼬이기만 하고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고, 또 더욱 더 다른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혹 일시적인 슬럼프에 빠진 것일까? 과거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에 이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한창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때였는데 슬럼프에 빠져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허무하게 시간만 흘려 보내었다.
딱히 걱정이 있었는것도, 공부가 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아무 이유없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우울증이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일시적인 슬럼프에 빠진 것이라 믿었다.
그러 던, 어느 날.
유흥주점 소녀 자살 사건때 나와 함께 현장조사를 나갔던 형사가 검찰로 직접 나를 찾아왔다. 그 사건은 이미 까마득히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을 때였고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함께 수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새삼 반갑기도 했다.
마침 한가한 점심시간이었던지라 나는 그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묵직한 서류를 건내며 말했다.
“나중에 집에 가셔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이게 뭡니까?”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형사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근에 일어난 조직폭력배 사망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입니다.”
“사망사건? 살인사건이 아니구요?”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단순히 사고사도 아니고 의문사입니다. 그리고 모두 사망원인이 일치합니다.”
“사망원인이 뭡니까?”
“심장마비에요.”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그가 왜 이런 이야기를 내게 꺼내는건지. 또 왜 그 사건의 조사내용을 나한테 따로 쥐어주며 보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사는 말을 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설마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 범위가 좁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죽은 조직원들은 모두 흑룡파의 조직원들 입니다.”
“흑룡파라면?”
그때서야 잊고 있었던 소녀의 사건이 떠올랐다.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소녀가 자살했던 업소를 관리하던 녀석들입니다.”
“뭐라구요?”
형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적대관계에 있는 조직에서 꾸민 짓이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한게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수개월 전에 있었던 대대적인 조폭검거 작전이후로 대부분의 조직들이 잠시 몸을 움츠리고 다시 날개를 펼 날만 기다리며 조직을 재정비 하는 시기라 이런 식의 적대적인 짓을 저지를 때도 아니구요.”
나는 불김함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온 몸에 소름에 끼쳤다.
“게다가 세력다툼에 의한, 또는 원한에 의한 짓이라면. 아니, 최소한 사람이 한 짓이라면 흉기를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를텐데 도대체 무슨 수작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다들 똑같이 심장마비로 죽어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평소 심장질환을 앓아온 이들은 있습니까?”
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다들 신체 건강했던 녀석들입니다.”
“독극물에 의한 것은 아닙니까?”
“부검까지 해보았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한결같이 못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죽어 있다는 겁니다.”
형사는 내게 주었던 서류를 집더니 가장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서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은...”
페이지에 인쇄된 남자의 모습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은 바로 업주였던 것이다. 나는 경악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형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귀신이 나타나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말입니까?”
“비과학적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시 말하기 꺼려하는 눈치를 보이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괜찮으니 할 말이 있으면 편히 하라고 말했고 형사는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꺼냈다.
“매일 밤 꿈에서 죽은 소녀가 나타나... 검사님께 이 사건을 매듭짓게 해달라고 합니다.”
[005]
돌이켜보자면 내 잘못이 너무 컸다. 그 때, 확실하게 사건에 숨겨진 진상에 대해 파고들어서 밝혀냈어야했다. 어쩌면 나는 이 사건을 방관한 방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소녀는 분명히 원치않는 접대와 2차를 강요받았을 것이며 폭행이나 폭언, 임금갈취, 감금. 이런 문제에 노출되어 있었음이 분명했다. 더 나아가자면 성폭행까지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이제야 내가 매일 밤 꾸고 있는 악몽이 이해되었다. 나는 이제야 죽은 소녀의 생전의 모습이 담긴 증명사진을 보게 되었다. 꿈 속에서 본 귀신의 모습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귀신의 정체가 죽은 소녀라는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소녀가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진실을 밝혀달라는 메시지가 아니였을까?
수십번에 걸쳐 내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내가 그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항상 도망만 치게되니 답답한 마음에 형사에게 나타나서 부탁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보고하면 상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비난이나 압력이 있을테지만 다시 재조사 하는 것만이 소녀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부와 동료 검사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사건의 재조사 의지를 확실히 전달하고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 죽은 상태였다.
해당 업소를 주로 관리했던 폭력배 4명과 업주. 총 5명이었다. 앞으로 또 누가 죽게 될까? 더 이상 죽을 사람이 없다면 소녀는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주길 원하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건이 종결된지도 꽤 오래되었고 업주까지 죽은 마당에 과거에 일했던 종업원들이 아직도 남아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고, 내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예상대로 업소는 이미 문을 닫았고 업소에서 일했던 종업원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주변 상가의 주인과 직원들의 도움으로 업소에서 일을 하다 얼마 전 바로 근처의 다른 업소로 옮겼다는 웨이터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힘들게 찾아내서 만난 웨이터는 내 질문에 무조건 대답을 회피하려 했지만 끈질기게 설득을 하자 그는 조사에 응하기로 했다. 그는 업소 주인의 동의를 얻어 잠시동안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가까운 찻집에 마주앉았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그동안의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고백했다.
소녀는 접대부로 일을 해왔으며, 2차는 물론 폭행과 협박에 시달렸다고 했다. 5시부터 가게에 나와 카운터를 지켰고 밤에는 룸으로 들어가 술을 팔아야 했으며 일이 끝난 새벽에는 사장과 폭력배들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건의 진상을 듣고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과거 내가 조사를 나왔을 적에 이런 사실을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 때는 업주의 협박을 도무지 이겨낼 수가 없어서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용기를 내어 경찰의 도움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뒤따를 보복이 두려웠다는 것이다. 그럴만도 했다. 나는 충분히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는 거대조직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고 조직원 한두명 잡혀간다해서 무너질만한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법은 보복에 대한 처벌이 강력하다. 하지만 다른 조직원이 대신 보복을 가하고 특별한 물증이 없다면 처벌을 하는데 애로가 있었다.
웨이터의 말에 의하면 소녀가 임신을 한것은 아마도 사장이나 폭력배들이 강간을 할 때 피임도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어린 여자얘에게 성욕을 느끼는 남성들의 변태적인 성욕구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이 땅에는 소아성애증을 앓는 남성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소녀는 자신과 관계를 가졌던 이들에게도 죽음을 선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소녀와 관계를 맺었던 남성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지만 처벌을 받을 사람은 모두 심장마비로 죽은 상태였다. 처벌을 받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이 사건의 숨겨진 진상이라도 밝혀내어 나는 소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이 사건을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했다.
나는 웨이터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그가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직... 아직 한가지 말 못한게 있습니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006]
우리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채, 어두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그 얘가 내 꿈에 나타났어요.”
이승에서의 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는 소녀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당했던 상처와 한을 풀기위해 소녀가 아는 이들의 꿈에 나타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얘가 처음 왔을 때, 왠지모를 동정심에 조금씩 챙겨주곤 했거든요. 물론 망할놈의 사장 때문에 그러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얼마가지 못했지만요.”
혹시라도 소녀가 도망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기도 했다. 그는 어둠이 깔린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얘가 너무 가여워서 도망가게 해줄려다가 관리하는 깡패들한테 걸려서 맞아 죽을 뻔했거든요. 그후론 그 얘한테 다가가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며칠 전부터 꿈에 나타나 부탁을 하더라구요. 누군가 찾아올테니 솔직하게 말해달라구요.”
그게 나인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도 담담한 마음에 담배를 피웠다. 그는 마음속의 짐을 훌훌 털어버리듯 평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도 지배인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그 얘. 팔려온 노예와 같은 얘라고 하더라구요.”
숨겨진 일이 더 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녀는 그 또래와 다를바없이 평범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다만 또래와 다른 것이 있다면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소녀가장이었다. 비록 가난하고, 아버지도 병들어 누워 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가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초라한 가족의 초라한 행복마저 깨버린것은 흑룡파라는 조직폭력배들이었다.
나라에서 나오는 보조금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벅찬 나머지 소녀의 아버지는 아는 사람을 통해 사채업자를 소개받았고, 사채업자에게 소액의 돈을 빌렸다. 담보로 맡길만한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채업자는 딱한 사정을 봐준다는 듯 호의를 베풀며 선뜻 돈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그 사채업자는 흑룡파의 조직원이었고, 흑룡파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사람이라도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도 해왔다는 것이었다. 사채업자가 노린 것은 바로 소녀였다.
돈을 갚을 만기일이 지나기도 전에 사채업자의 독촉은 시작되었다. 독촉은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진 않았다. 처음부터 빌려준 몇푼 되지도 않는 돈의 원금과 이자가 목적이 아니라 소녀가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소녀를 강제로 끌고갔고 소녀의 아버지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했다. 소녀는 눈 앞에서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깡패들에게 끌려가야만 했을 것이다.
웨이터는 말을 마치며 눈물을 훔쳤다. 나는 이를 악물며 분을 삭혔다.
“저는 조직원들과 업주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얘가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믿었어요.”
“혹시...?”
“아직 저주는 끝나지 않았을 거에요.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자기를 주점에 팔아넘긴 놈들이 아직도 살아있으니까요.”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웨이터는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 지배인과는 연락이 됩니까?”
“얼마전 자살했다고 들었어요.”
이 사건은 알아갈수록 충격 그 자체였다. 소녀와 관련된 대부분의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웨이터는 말을 이었다.
“지배인도 일이 그렇게 되고나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에요. 가게에서 일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한동안은 소녀의 귀신에 홀려서 제대로 된 생활을 못했으니까요.”
아직도 소녀의 원한은 풀리지 않았다. 소녀는 이 사건을 매듭지어줄 사람으로 나를 선택했다. 나에겐 이 사건을 해결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이것은 소녀가 내게 주는 임무라고....
[007]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는 정보통을 통해서 흑룡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조사를 진행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사채업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도 이미 죽은 상태였고, 그 외에 소녀를 강제로 끌고오는데 가담했던 조직원들은 파악이 불가능했다. 소문에 의하자면 조직 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고 현재는 거의 와해되어 가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웨이터의 진술을 토대로 대대적으로 흑룡파의 조직원들을 구속할 준비를 서둘렀다. 정보를 입수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의자에 걸터앉았다. 피곤했던 탓인지 나는 그대로 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희뿌연 안개가 보였다. 나는 익숙한 길을 걷고 있다.
분명히 아는 길이지만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 순간, 번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게 있었다. 이것은 꿈이다. 내가 늘 꾸던 악몽이었다. 오늘만큼은 절대 도망치지 않으리라 굳은 각오를 다지고 나는 길을 걸었다. 오늘만은 소녀가 내게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꼭 듣고 말 것이라 나는 다짐했다.
떨리는 가슴으로 천천히 조심스레 길을 걸었다. 길의 중앙에는 하얀소복을 입은 소녀가 서있는것이 보였다. 소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걷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내게 다가오는 소녀를 기다렸다.
내 앞에 멈춰선 소녀의 모습은 슬퍼보였다. 소녀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하지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치 그것은 사후세계의 언어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입모양을 주시한다. 소녀의 입모양을 똑같이 따라하며 발음한다.
“찾... 아... 줘...?”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008]
다음 날,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흑룡파의 두목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때까지 자신의 조직원들이 죽어왔던것과 똑같은 방식의 죽음이었다. 경찰은 연이어 일어나는 폭력배의 심장마비 사망사건을 살인사건이라 단정짓고 특별수사반까지 결성하여 수사에 착수했다고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은 사람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과연, 이제는 또 누가 죽게될 것인가? 소녀는 내게 무언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무엇을? 도대체 무엇을 찾아달라고 하는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죽은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하는 것일까 싶어 조사를 해보았더니 동네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초라하게나마 장례를 치루어 주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동네사람들 중에는 소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소녀가 좋지못한 일로 자살을 했다고 말할 수가 없어 그냥 돌아서버렸다. 때로는 모르고 사는게 약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니까.
흑룡파의 조직원들을 모두 구속하려 했던 내 보고서는 상부에 보고되기가 무섭게 무참하게 찢겨지고 말았다.
나는 친한 동기로부터 내가 하려고 했던 짓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짓인지를 들을 수가 있었다. 흑룡파라는 조직은 국회의원들을 등에 업고 자라나기 시작한 조직이었다.
그들은 정치인들에게 불법자금을 대주기도 하고, 또 그들의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자신들이 대신 손을 더럽히며 뒷처리를 해주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상부에서 내게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말할 만도 했다. 내가 여기서 손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덤벼든다면, 나는 검사직은 고사하고 어디가서 변호사라도 하지 못할 만큼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헌법을 수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이런 날의 한 소년의 모습이 너무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조리를 척결하겠다고 말하던 한 청년의 모습이 가엽게 느껴졌다.
이 사회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이들은 ‘좌파’ 이고, 이 세상을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 말하는 이들은 북한 공산당의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빨갱이’다. 그것이 이 사회의 우익과 기득권이 형성해낸, 기득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어차피 죄값을 치루어야 하는 이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 지금 남은 흑룡파는 와해된거나 다름없는 조직이었다. 굳이 그런 그들을 건드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나는 이 사건에서 손을 놓기로 마음먹었다.
흑룡파는 거의 와해된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이 말로 나의 죄를 숨기려하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후부터 하늘은 비라도 쏟아질 듯 먹구름이 가득했다. 곧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쏟아졌다. 오랜만에 보는 비였다. 어쩌면 그것은 소녀가 흘리는 눈물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것으로 소녀의 저주는 모두 끝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이대로 사건을 종결하면 되는 셈이었다. 처벌받을 사람은 모두 죽었고, 더 이상 밝혀낼 수 있는 진상은 없었다. 하지만 자꾸만 응어리처럼 걸리는 것이 있다면 소녀가 찾아달라고 한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날은 평소보다 퇴근준비를 서둘렀다.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아주 잠시동안 기억이 멀어지고 말았다. 사고라도 난 것일까?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여전히 차를 타고 길위를 달리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채로 자동차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낯설었지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길이 보였다. 과연 여기는 또 어디일까? 나는 또다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꿈은 아니었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30분이나 훌쩍 지나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 30분동안의 기억이 없었다.
나는 정처없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이끌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소녀의 부검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비를 맞으며 건물 안으로 향했다. 저녁이라 모두 퇴근을 해버린 것인지 직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놀라게 한것은 경비원 마저도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캄캄한 어둠만이 보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져간다. 과연 내 몸은 내 의지까지 무시하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마치 자아를 상실한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빙의현상(憑依現象) 을 경험하고 있는것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누굴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얀소복이 보였다. 그 모습은 분명히 소녀였다. 소녀는 무언가를 줄에 묶어 질질 끌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그 물체가 무엇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줄에 묶여있는 알 수 없는 물체. 소녀는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손에는 줄에 묶인 물체를 끌고.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소녀의 얼굴 윤곽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사진에서 봤던 그 고운 얼굴은 없어지고 핏기하나 없는 창백한 표정이 보였다. 소녀는 나를 향해 살며시 웃어보인다.
만족한듯이, 무척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나를 바라보며 소녀가 말문을 열었다.
“... 찾... 았.... 어...”
쇠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 귀가 아팠다.
대체 무엇을 찾았다는 것일까? 나는 소녀가 찾았다는 것이 궁금했다. 소녀가 내 앞에 다다를 때쯤, 나는 소녀가 찾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소녀의 손에 끌려오는 물체를 보고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태아의 사체였던 것이다. 소녀는 탯줄도 잘리지 않은 태아의 사체를 들어서 흔들어 보이며 내게 말했다.
“... 찾... 았.... 어...”
그렇게 말하며 히죽웃는 소녀의 모습에 나는 그만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그 후의 일들은 동료검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현관문에 쓰러져 있었고, 온몸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몸에는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건물안에는 소녀의 부검을 맡았던 연구원의 목이 날카로운 것에 찢겨진 채 죽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죽어있던 장소는 그의 개인 연구실이었다고 한다. 연구실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표본들이 수집되어 있는데 수많은 표본중 하나가 깨져 있었다고 한다.
죽어버린 연구원의 몸은 표본안에 가득차 있었을 포르말린에 쩔어있었는데 마치 그 연구원이 하나의 표본처럼 보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표본안에 들어가 있던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표본통 앞에는 이런 이름표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fetus’ (포유 동물, 특히 사람의 임신 3개월이 넘은 태아)
어쩌면 소녀는 내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것이 아닌, 그저 부검을 통해서 자신의 자궁에서 빼간 아기를 되찾아달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난 혼자만의 사명감에 취해 괜한 짓을 한 것 같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나는 이 곳에 누워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그 사건을 맡지 않았더라면 나는 유능한 검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은,
정신병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연구원을 죽인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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